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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조선 제4대 임금

일대기 세종은 1397년 이방원과 민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00년 아버지인 정안대군 이방원이 조선의 제3대 임금이 되었고, 1412년 세종은 충녕대군이 되었습니다. 1418년 양녕대군이 왕세자에서 밀려나고 충녕대군(세종)이 왕세자가 되었고 그해 8월 태종(이방원)에 이어 조선의 제4대 임금이 되었습니다. 첫째 형인 양녕 대군은 놀기를 좋아하면서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켜 왕세자의 자리를 내놓게 되었고 평소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시고 형제간의 우애를 잘 지켰던 세종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세종은 어려서부터 잠시도 손에서 책을 떼어 놓지 않았으며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신하들이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의견을 잘 받아주었습니다. 세종의 이..

위인 2023.06.29

김구 독립운동가 백범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써 고함

일대기 김구는 1876년 음력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구의 어렸을 때 이름은 창암이었습니다. 집안의 한 어른이 양반들이 쓰는 갓을 쓰고 나갔다가 이웃 마을 양반들에게 들켜 갓을 찢기는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본 김구는 과거에 합격해서 양반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김구가 살던 동네에는 서당이 없었지만, 김구의 의지가 굳은 것을 본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서 선생님도 모셔오고 서당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구는 학식과 이름이 높은 선생님에게 글을 배우고 싶었고 인연이 닿아 정문재 라는 이름난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과거인 경과가 해주에서 열려서 김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갔으나 돈으로 관직을 ..

위인 2023.06.29

한용운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만해 기념관

일대기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아버지 한응준과 어머니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정옥이었고 아명은 유천입니다. 한용운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한 선비 가문이었고 1884년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의 역사책 통감을 비롯 소학 등을 모두 떼어 마을에서는 신동이 났다고 한용운을 칭찬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대학을 읽던 한용운은 그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을 정도로 이미 나름대로 경전을 해석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14세 되던 1892년 집안에서 정해준 전정숙과 결혼했고 16세 되던 해인 1894년부터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894년 동학농..

위인 2023.06.28

안창호 교육자 독립운동가 도산공원

일대기 안창호는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도롱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안창호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아 6세 때부터 집에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9세 때는 서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성에서 공부를 마친 안창호는 청일 전쟁을 겪으며 여성들 또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약혼녀 이혜련과 여동생을 한성으로 데려와 새로운 학문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 사이 안창호는 독립협회 활동을 시작했고 평양 지회를 세우고 쾌재정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독립협회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실시하려 한다며 고종임금이 독립협회에 해산명령을 내렸고, 안창호 또한 독립..

위인 2023.06.28

신채호 사학자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일대기 신채호 사학자 및 독립운동가는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참고로 신채호는 고령 신씨 집안으로 세종대왕 때 한글을 만드는 데 공이 컸던 신숙주의 18대손입니다. 신채호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집안이 기울어 형편이 좋지 않았고 할아버지인 신성우는 정6품 벼슬까지 지냈으나 곧은 성품 때문에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도 재산을 많이 모아두지 못했습니다. 신채호는 형 신재호보다 훨씬 영리했고 가족들의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신채호가 8살 되던 해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가 차린 서당에서 글공부를 했습니다. 9살 무렵 이미 중국 역사책인 자치통감을 떼었고 14살이 됐을 때는 사서삼경을 떼고 한시까지 거뜬히 지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18살이 되던해 신채호는..

위인 2023.06.27

유관순 열사 3·1 운동을 이끈 애국의 횃불

*참고 열사 :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대기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7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용두리 지령마을에서 유중권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9세가 되던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한일 병합 조약을 강제로 맺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유관순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공주에 와 있던 미국인 선교사의 부인인 사 부인이 유관순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1916년 15세의 나이로 경성 이화 학당 보통과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관순은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

위인 2023.06.27

안중근 의사 동포에게 고함

* 참고 의사 =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 열사 = 독립을 위해 평화투쟁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 일대기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안중근의 집안은 황해도 일대에서 유명한 명문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안인수는 진해 현감을 지냈고, 아버지 안태훈도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북두칠성이 안중근을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명을 응칠이라고 지었습니다. 응칠이는 성질이 급해 할아버지는 무거울 중에 뿌리 근 자로, 안중근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문, 유학, 경전, 역사는 물론 총 쏘는 법도 익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격실력이 뛰어나 유명한 사냥꾼 못지 않은 실력으로 야생동물을 잡았습니다. 안중근은..

위인 2023.06.26

이순신 장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 일대기 1545년 4월 28일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마르내골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태어났습니다. 이순신의 집안은 대대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 많은 덕수 이씨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증조할아버지 이거는 조선 성종 때 세자였던 연산군의 스승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한성 시장의 상인들을 관리하는 평시서라는 하급관리였고 역적 모의에 관련되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인 이정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고 이순신 가족의 집안 형편을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친정인 충청남도 아산 백암리로 이사를 했으며 이순신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쟁 놀이를 즐겨 했습..

위인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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