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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농학자 육종학자 농업 기술로 조국을 살린 한국인

일대기 우장춘은 1898년 4월 8일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의 군인이었고 일본인들의 음모에 명성 황후를 시해하는 것을 방조하게 되었고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우장춘의 어머니인 사카이 나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범선은 1903년 조선에서 온 황국협회에서 온 고영근에게 살해를 당해 우장춘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1911년 우장춘은 히로시마 현의 구레 중학교에 들어갔고 졸업할 무련 조선 총독부에서는 도쿄 제국 대학 농학부에 진학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1916년 농학부 실과에 들어간 우장춘은 육종학의 기초 지식과 유전자에 대한 내용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1919년 조선 유학생들이 졸업을 앞둔..

위인 2023.07.19

함석헌 역사학자 종교인 독립운동가 씨알사상

일대기 함석헌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서해의 작은 마을에서 한의사를 하던 아버지 함형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함석헌의 고향에는 교회가 들어와 있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함석헌 또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1906년 사립 기독교 학교인 덕일 소학교에 입학했고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함석헌은 평양 고등 보통학교 3학년 시절 3 1 운동에 참가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고, 고향으로 돌아온 함석헌은 집안일을 도우며 학교를 그만두고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함석규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민족 학교인 오산 학교에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함석헌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던 오산 ..

위인 2023.07.18

신재효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작가 이론가 연출가

일대기 신재효는 1812년 11월 6일 전라북도 고창 모양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재효의 어머니는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생기지 않아 걱정했고 늘 허전한 마음이 있었는데, 초산 월출봉에 남편과 함께 가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한 탓인지 드디어 신재효를 갖게 되었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뜻으로 있을 재 在, 효도 효 孝 , 재효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신재효는 신동으로 소문이 날 만큼 총명하였고 아버지 신광흡은 학문은 물론 의학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통해 글 공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신재효의 집안은 중인 신분이었기에 신분의 제약이 있었고 높은 관직까지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병이 깊어서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행히 관약방(현재의..

위인 2023.07.17

이중섭 서양화가 조선의 혼이 담긴 그림 흰소

일대기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아버지 이희주와 어머니 안악 이씨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이중섭의 집안은 대대로 넓은 땅을 소유한 지주였고 형 이중석과는 12살, 누나 이중숙과는 5살 차이가 났습니다. 이중섭의 아버지는 이중섭이 다섯 살 되던 해 돌아가셨습니다. 1923년 이문리 외가로 옮긴 이중섭은 종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했고 훗날 동료 화가가 된 김병기, 작가 김이석, 황순원과 같은 학년에서 공부했습니다. 친구인 김병기의 아버지인 김찬영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 화가인 고희동에 이어 두 번째 서양 화가였고 이중섭은 그런 아버지가 있는 김병기를 부러워했습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이중섭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오산학..

위인 2023.07.16

지석영 한의사 우리나라 최초 종두법 실시 예방의학자 송촌

일대기 지석영은 1855년 5월 15일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지익룡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아 집안에 약재들을 갖추고 있었고 지석영은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지익룡은 친구였던 한의사 박영선에게 한학과 의학을 배우게 했고, 박영선은 한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지석영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지석영은 중인의 신분이었기에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 과목이 제한되었기에 더더욱 의학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석영은 여러 의학 분야에서도 종두법이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후, 스승인 박영선은 일본에 파견되는 수신사의 일행이 되었고 일본에서 종두법에 대해 배우..

위인 2023.07.15

김홍도 화가 우리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겸손한 대화가

일대기 김홍도는 1745년 경기도 안산에서 아버지 김석무와 어머니 문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각각 별제, 만호라는 낮은 벼슬을 지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무런 벼슬도 하지 못해 가난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김홍도는 중인 신분이었기에 신분의 제약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겸손한 성품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잘 받아들여 훌륭한 화가가 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홍도는 그림, 글, 시 짓기에 모두 뛰어나 삼절로 불리던 스승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1773년 29세 때 김홍도의 그림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이어지자 영조와 정조의 초상화(한국전쟁 당시 불타 없어짐)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동참 화사 라는 직책도 맡게 ..

위인 2023.07.14

광개토 대왕 우리 민족 최고의 정복왕 고구려 광개토 대왕릉비

일대기 광개토 대왕은 374년(소수림왕 4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담덕이며 큰아버지가 바로 소수림왕 입니다. 당시 고구려의 귀족들은 믿는 종교가 서로 달랐기에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여 나라의 종교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소수림왕은 아들이 없었기에 조카인 담덕을 매우 아꼈고 담덕의 무예와 총명함에 흡족해했습니다. 384년 소수림왕은 세상을 떠났고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동생이자 담덕의 아버지인 이련(고국양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386년 담덕은 13세의 나이로 태자가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를 다니며 전투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하지만 391년 아버지인 고국양왕마저 세상을 떠났고, 18세의 나이로 담덕은 왕이 되었습니다. 광개토 대왕이 된 담덕은 우선 졸본에 있는 동명왕(주몽)의 무덤에 가서 자손으..

위인 2023.07.13

주시경 국어학자 독립운동가 국어문법 말의소리

일대기 주시경은 1876년 12월 22일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 전산리 무릉골에서 아버지 주학원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주시경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풍기에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의 13대 손입니다. 해마다 과거를 보러 다니느라 집안 살림에 소홀했던 아버지 주학원으로 인해 주시경의 집은 매우 가난하였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주시경은 어려서부터 호기심과 탐구욕이 강했고 마음 먹은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이었습니다. 주시경은 1882년 7세 때부터 한문 공부를 시작했고 1887년 12세 때 큰아버지 주학만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나자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고 한성으로 와서도 글공부를 이어 나갔습니다. 주시경은 이회종 진사의 서당에 들어가게 되고 한문 공부를 하는 틈틈이 ..

위인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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