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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8

정조 백성을 사랑한 조선 제22대 왕 규장각 장용영 수원화성

일대기 정조는 1752년 9월 22일 사도 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정조의 본명은 산이며, 자는 형운, 호는 홍재입니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총명했으며 특히 할아버지인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또한 정조는 백성들을 먼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학문 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습니다. 1749년 영조는 체력이 약해져 사도 세자가 대리 청정을 시작했고 1752년 조정의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이유로 영조에게 심한 꾸중을 듣게 되었고 이후 화병이 나게 됩니다. 이후 마음대로 행동하며 난폭한 모습을 보였고, 1761년에는 석달 동안 평안도를 여행한 것이 빌미가 되었고 1762년 정조자 11세 되던 해, 아버지 사도 세자가 붕당을 맺었다는 ..

위인 2023.07.11

최무선 장군 우리나라 최초의 화포 발명가

일대기 최무선은 1328년경 경상북도 영천시 오계동 마단에서 곡식을 관리하는 광흥창 관리였던 아버지 최동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최무선은 글을 익히는 것보다는 전쟁놀이를 좋아했고 대장을 맡아가며 전략을 세웠고, 손재주를 활용해 다양한 무기들도 만들었습니다. 당시 고려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들어오긴 했지만 중요한 군사 정보였기에 만드는 방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원나라에 간섭을 받거나 홍건적의 침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최무선은 나라의 군사력을 키워야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청년이 된 최무선은 무기를 만들고 보관하는 군기감에서 관리로 일하게 되었고, 우리의 힘으로 화약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염초와 관련된 의학서까지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0여 년동안 염초를 만드는 일에 몰두..

위인 2023.07.07

최승희 무용가 민족 무용의 선구자

일대기 최승희는 1911년 11월 24일 경성에서 아버지 최준현과 어머니 박성녀 사이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최승희의 집안은 정승과 판서를 지낸 해주 최씨 명문가였고, 최승희도 소학교인 숙명 학교 보통과를 다니며 공부를 잘해서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숙명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집안이 망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으나 최승희의 재능을 아라본 김영환 음악 선생님 덕분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숙명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할 당시까지만해도 키가 작았던 최승희는 갑자기 키가 자랐고, 얼굴도 예쁘고 자존심도 강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1926년 경성 사범학교 입학 시험..

위인 2023.07.01

김구 독립운동가 백범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써 고함

일대기 김구는 1876년 음력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구의 어렸을 때 이름은 창암이었습니다. 집안의 한 어른이 양반들이 쓰는 갓을 쓰고 나갔다가 이웃 마을 양반들에게 들켜 갓을 찢기는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본 김구는 과거에 합격해서 양반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김구가 살던 동네에는 서당이 없었지만, 김구의 의지가 굳은 것을 본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서 선생님도 모셔오고 서당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구는 학식과 이름이 높은 선생님에게 글을 배우고 싶었고 인연이 닿아 정문재 라는 이름난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과거인 경과가 해주에서 열려서 김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갔으나 돈으로 관직을 ..

위인 2023.06.29

한용운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만해 기념관

일대기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아버지 한응준과 어머니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정옥이었고 아명은 유천입니다. 한용운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한 선비 가문이었고 1884년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의 역사책 통감을 비롯 소학 등을 모두 떼어 마을에서는 신동이 났다고 한용운을 칭찬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대학을 읽던 한용운은 그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을 정도로 이미 나름대로 경전을 해석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14세 되던 1892년 집안에서 정해준 전정숙과 결혼했고 16세 되던 해인 1894년부터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894년 동학농..

위인 2023.06.28

신채호 사학자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일대기 신채호 사학자 및 독립운동가는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참고로 신채호는 고령 신씨 집안으로 세종대왕 때 한글을 만드는 데 공이 컸던 신숙주의 18대손입니다. 신채호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집안이 기울어 형편이 좋지 않았고 할아버지인 신성우는 정6품 벼슬까지 지냈으나 곧은 성품 때문에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도 재산을 많이 모아두지 못했습니다. 신채호는 형 신재호보다 훨씬 영리했고 가족들의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신채호가 8살 되던 해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가 차린 서당에서 글공부를 했습니다. 9살 무렵 이미 중국 역사책인 자치통감을 떼었고 14살이 됐을 때는 사서삼경을 떼고 한시까지 거뜬히 지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18살이 되던해 신채호는..

위인 2023.06.27

안중근 의사 동포에게 고함

* 참고 의사 =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 열사 = 독립을 위해 평화투쟁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 일대기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안중근의 집안은 황해도 일대에서 유명한 명문 집안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안인수는 진해 현감을 지냈고, 아버지 안태훈도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북두칠성이 안중근을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명을 응칠이라고 지었습니다. 응칠이는 성질이 급해 할아버지는 무거울 중에 뿌리 근 자로, 안중근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한문, 유학, 경전, 역사는 물론 총 쏘는 법도 익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격실력이 뛰어나 유명한 사냥꾼 못지 않은 실력으로 야생동물을 잡았습니다. 안중근은..

위인 2023.06.26

이순신 장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 일대기 1545년 4월 28일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마르내골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태어났습니다. 이순신의 집안은 대대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 많은 덕수 이씨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증조할아버지 이거는 조선 성종 때 세자였던 연산군의 스승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이백록은 한성 시장의 상인들을 관리하는 평시서라는 하급관리였고 역적 모의에 관련되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인 이정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고 이순신 가족의 집안 형편을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친정인 충청남도 아산 백암리로 이사를 했으며 이순신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쟁 놀이를 즐겨 했습..

위인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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