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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9

이상백 체육인 사회학자 독립운동가 우리나라 올림픽의 아버지

일대기 이상백은 1903년 8월 5일 대구에서 아버지 이시우와 어머니 김신자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7년 5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큰아버지 이일우 밑에서 자랐고 큰아버지가 세운 우현서루와 강의원에서 서양 학문도 배웠습니다. 이상백의 집안은 양반이긴 했으나 사회적 신분이나 크게 내세울 것은 없던 중간 정도의 집안이었고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땅을 많이 가진 지주였기에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큰아버지 이일우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교육 및 독립운동에 기부한 애국자였습니다. 어머니 또한 대구 지역 여성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이상백의 4형제 모두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었고 용봉린학(용 봉황 기린 두루미), 4천왕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특히 이상백의 둘째 형이상화는 ..

위인 2023.07.21

유일한 기업인 독립운동가 민족기업 유한양행

일대기 유일한은 1895년 1월 15일 평양에서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김기복의 6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장사를 했고 아명은 일형이었습니다. 유일한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우리 땅에서 청나라와 일본이 전투를 벌였고 유일한의 부모님은 가게 문을 닫고 피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일찍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민들이 투표하여 뽑은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서 평양으로 온 미국인 선교사가 총명한 조선 소년을 미국으로 보내 공부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고 유기연은 열살이 된 유일한을 미국으로 보내 공부시키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완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

위인 2023.07.20

함석헌 역사학자 종교인 독립운동가 씨알사상

일대기 함석헌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서해의 작은 마을에서 한의사를 하던 아버지 함형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함석헌의 고향에는 교회가 들어와 있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함석헌 또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1906년 사립 기독교 학교인 덕일 소학교에 입학했고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함석헌은 평양 고등 보통학교 3학년 시절 3 1 운동에 참가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고, 고향으로 돌아온 함석헌은 집안일을 도우며 학교를 그만두고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함석규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민족 학교인 오산 학교에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함석헌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던 오산 ..

위인 2023.07.18

주시경 국어학자 독립운동가 국어문법 말의소리

일대기 주시경은 1876년 12월 22일 황해도 봉산군 쌍산면 전산리 무릉골에서 아버지 주학원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주시경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풍기에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의 13대 손입니다. 해마다 과거를 보러 다니느라 집안 살림에 소홀했던 아버지 주학원으로 인해 주시경의 집은 매우 가난하였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주시경은 어려서부터 호기심과 탐구욕이 강했고 마음 먹은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이었습니다. 주시경은 1882년 7세 때부터 한문 공부를 시작했고 1887년 12세 때 큰아버지 주학만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나자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고 한성으로 와서도 글공부를 이어 나갔습니다. 주시경은 이회종 진사의 서당에 들어가게 되고 한문 공부를 하는 틈틈이 ..

위인 2023.07.12

나운규 감독 독립운동가 한국 영화의 아버지

일대기 나운규는 1902년 10월 27일 함경북도 회령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아버지 나형권의 6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나형권은 신식 군대의 군인이었으나 을사늑약에 따라 군대를 해산시키자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한약방을 열었습니다. 나운규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자기 집에 모아놓고 연극을 하는 것을 좋아했고 호기심과 흥미를 가진 일이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었습니다. 1918년 나운규는 북간도의 유일한 조선학교이자 독립군 양성소의 역할도 했던 명동 중학교에 다녔고, 1919년 3 1운동에도 참가했습니다. 이후 친구인 윤봉춘과 독립군의 비밀 조직인 청산리 도판부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나이 많은 독립군이 공부를 계속해 지식을 쌓는 것도 애국하는 길이라고 조언을 했고 결국..

위인 2023.06.30

김구 독립운동가 백범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써 고함

일대기 김구는 1876년 음력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구의 어렸을 때 이름은 창암이었습니다. 집안의 한 어른이 양반들이 쓰는 갓을 쓰고 나갔다가 이웃 마을 양반들에게 들켜 갓을 찢기는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본 김구는 과거에 합격해서 양반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김구가 살던 동네에는 서당이 없었지만, 김구의 의지가 굳은 것을 본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서 선생님도 모셔오고 서당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구는 학식과 이름이 높은 선생님에게 글을 배우고 싶었고 인연이 닿아 정문재 라는 이름난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치르는 과거인 경과가 해주에서 열려서 김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갔으나 돈으로 관직을 ..

위인 2023.06.29

한용운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만해 기념관

일대기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아버지 한응준과 어머니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정옥이었고 아명은 유천입니다. 한용운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한 선비 가문이었고 1884년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의 역사책 통감을 비롯 소학 등을 모두 떼어 마을에서는 신동이 났다고 한용운을 칭찬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대학을 읽던 한용운은 그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을 정도로 이미 나름대로 경전을 해석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14세 되던 1892년 집안에서 정해준 전정숙과 결혼했고 16세 되던 해인 1894년부터는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894년 동학농..

위인 2023.06.28

안창호 교육자 독립운동가 도산공원

일대기 안창호는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도롱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안창호의 부모님은 교육열이 높아 6세 때부터 집에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9세 때는 서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성에서 공부를 마친 안창호는 청일 전쟁을 겪으며 여성들 또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약혼녀 이혜련과 여동생을 한성으로 데려와 새로운 학문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 사이 안창호는 독립협회 활동을 시작했고 평양 지회를 세우고 쾌재정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독립협회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실시하려 한다며 고종임금이 독립협회에 해산명령을 내렸고, 안창호 또한 독립..

위인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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