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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역사학자 종교인 독립운동가 씨알사상

오주부의 내돈내산 2023. 7. 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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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출처: 위키백과

 

 

 

일대기

 

함석헌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서해의 작은 마을에서 한의사를 하던 아버지 함형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함석헌의 고향에는 교회가 들어와 있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이었고 함석헌 또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1906년 사립 기독교 학교인 덕일 소학교에 입학했고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함석헌은 평양 고등 보통학교 3학년 시절 3 1 운동에 참가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고, 고향으로 돌아온 함석헌은 집안일을 도우며 학교를 그만두고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함석규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민족 학교인 오산 학교에 들어가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함석헌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던 오산 학교에 입학해 교장인 이승훈에게 교육자의 인격과 애국하는 민족정신,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도 배웠습니다.

 

 

 

1923년 오산 학교를 졸업한 함석헌 역시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사범학교가 있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1924년 함석헌은 도쿄 고등 사범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역사, 윤리, 그리고 교육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사상과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1928년 도쿄 고등 사범학교를 졸업한 함석헌은 오산 학교의 선생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학생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훌륭한 인물들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1927년에는 동인지 성서 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쓰게 되었고 실패했던 우리의 역사 또한 가르치며 반성하고 이어나가야 할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산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함석헌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일본 경찰에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평양 송산 농사 학원을 인수 받고 소수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때 일본 도쿄에서 온 형사대를 따라 유치장으로 가게 되었고 옥중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42년에는 성서 조선 사건으로 다시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1943년에 풀려났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했고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함석헌은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YMCA 강당에서 종교 집회를 열고 성서를 연구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어느날 그 곳에 장준하가 찾아왔습니다.

 

임시 정부 광복군 장교로 활동한 독립 운동가 장준하의 영향으로 함석헌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동족끼리 죽이는 전쟁도 치렀으니 이제 서로 화해하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는 글을 작성했는데 이승만 정권은 함석헌을 그대로 두지 않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함석헌이 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글이 우리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석헌을 동정하고 지지하자 오래 잡아두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승만 정권을 20일 만에 함석헌을 석방했습니다.

 

함석헌은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 정치와 꿋꿋이 싸워나갔습니다.

 

 

 

1970년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라는 월간지를 만들었고 독재 정치의 억압에도 재판부의 무혐의 판결을 받아내었습니다. 참고로 씨알은 특권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함석헌은 폭력 없는 저항정신을 실천하는 퀘이커 사상을 연구했는데, 이는 1947년 신의주 학생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남하했을 당시 퀘이커교를 처음 알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67년 함석헌은 미국 퀘이커교도 태평양 협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고 퀘이커 교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퀘이커교는 개인과 전체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며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종교 활동을 했습니다.

 

함석헌의 이러한 활동으로 1979년, 1985년 모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습니다.

 

함석헌은 1989년 2월 4일 결국 89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2001년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함석헌 기념관

 

주소: 서울시 도봉구 도옵로 123길 33-6 

 

함석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지막 여생을 보낸 도봉구 쌍문동 집을 보존 리모델링하여 기념관 형식으로 건립.

 

함석헌 기념관 *출처: 함석헌 기념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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