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분류 전체보기 240

김정희 실학자 서예가 고증 역사 금석학자 추사 세한도

추사 김정희 영정 보물 제457호, 김정희 사후 이한철이 대례복(중대한 의식이 있을 때 벼슬아치가 입던 예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림. 일대기 김정희는 1786년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김노경과 유씨 부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명은 원춘이었고 호는 처음에 추사였는데, 이후 100여 개의 호를 바꿔 썼습니다. 김정희의 집안은 고조할아버지인 김흥경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번창하기 시작해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라는 벼슬을 얻었습니다. 할아버지인 김이주 또한 영조의 보살핌으로 우참찬이라는 벼슬에 올랐고, 아버지 김노경 또한 판서를 지냈고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유군주의 딸이었습니다. 이처럼 김정희의 가문인 경주 김씨는 조선 후기 세도 정치의 주도세력이..

위인 2023.07.09

장영실 과학자 세계 최초 우량계 측우기 수표

일대기 장영실은 1390년경 태어났다고 추청되며, 아버지는 중국에서 피난을 와서 귀화한 장성휘이고, 어머니는 기생 노비 출신이었기에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의 관노비로 자랐습니다. 동래 관청에서 노비로 일하고 있던 장영실은 손재주가 뛰어나 익히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당시 임금인 태종에게도 그 소식이 들어갔습니다. 마침 태종은 궁궐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들을 구하고 있었고 장영실을 한성으로 불러 몇 가지 물품을 만들어보게 했습니다. 다행히 임금은 장영실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고 궁궐에 소속된 노비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궁중에서 천문학을 연구하던 중인 신분의 친구 윤사웅과 최천구, 그리고 장영실은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천문학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세종은 정확한 천문 관측기구를 만..

위인 2023.07.08

최무선 장군 우리나라 최초의 화포 발명가

일대기 최무선은 1328년경 경상북도 영천시 오계동 마단에서 곡식을 관리하는 광흥창 관리였던 아버지 최동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최무선은 글을 익히는 것보다는 전쟁놀이를 좋아했고 대장을 맡아가며 전략을 세웠고, 손재주를 활용해 다양한 무기들도 만들었습니다. 당시 고려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들어오긴 했지만 중요한 군사 정보였기에 만드는 방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원나라에 간섭을 받거나 홍건적의 침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최무선은 나라의 군사력을 키워야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청년이 된 최무선은 무기를 만들고 보관하는 군기감에서 관리로 일하게 되었고, 우리의 힘으로 화약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염초와 관련된 의학서까지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0여 년동안 염초를 만드는 일에 몰두..

위인 2023.07.07

정약용 학자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목민심서 수원화성

일대기 정약용은 1762년 6월 16일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양수리 마재(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은 여러 고을의 군수와 현감을 지낸 청렴한 관리였으나, 붕당 정치로 인해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마재로 내려와 살고 있었습니다. 4세 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9세 되던 1770년 어머니 윤씨가 세상을 떠나 그 슬픔을 잊으려 더욱 책을 읽는데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10세 때는 삼미집이라는 시집을 펴냈습니다. 1776년 15세 되던 해 승지 홍화보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 정재원에게는 호조 좌랑이라는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사도 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사도 세자를 보호하려다가 벼슬에서 물러난 시파와 개혁을 할 인..

위인 2023.07.06

원효 승려 학자 사상가 설서당 해골물

일대기 원효는 617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불등을촌의 밤나무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이름은 설서당 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잉피공은 서당이 김유신 장군처럼 훌륭한 화랑이 되길 원했고 서당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어느날 신라 사람들이 백제군에게 끌려가고 신라군이 고구려군을 죽이는 모습을 보며 왜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맴돌았습니다. 서당은 화랑이 되는 것보다 불교를 공부하여 구도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서당의 굳은 결심에 결국 승낙을 하였고, 근원을 이루는 새벽이라는 뜻의 원효로 스스로 호를 지었습니다. 원효는 항사사의 혜공에게 불법을 배웠고 불경 뿐만 아니라 고된 수행 끝에 진리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혜공은 대안 스님을 찾아가..

위인 2023.07.05

이황 유학자 청렴한 공직자 퇴계 도산서원

일대기 이황은 1501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현 온계리(현재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에서 아버지 이식과 어머니 박씨 사이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이식은 이황이 태어난지 일곱달만에 세상을 떠났고 첫째 부인의 자녀들까지 총 6남 1녀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 밑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조상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학문은 물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작은아버지 이우도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길러주었고 글공부도 가르쳤습니다. 이황은 한 번 책을 잡으면 열중했고 늘 복습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1519년에는 영천(현재 영주)의 의원에서 의술도 공부했는데, 학문 연구에만 몰두한 탓에 이황의 몸은 아주 약했습니다. 이후, 이황은 건..

위인 2023.07.05

허준 의원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은 구암 동의보감

일대기 허준은 1539년 경기도 파주에서 무관이었던 아버지 허논과 어머니 영광 김씨 사이에서 둘째이자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허준이 태어난 양천 허씨 가문은 양반가문이었는데, 허준은 첩의 아들이었으므로 서자로서 여러 가지 차별과 사회적 제약들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허준의 아버지 허논은 부안 군수로 있다가 부모의 상을 당해 잠시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 올라온 동안 허준이 태어난 것이었고, 허준은 유년시절 대부분을 전라남도 담양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허준은 글공부를 해도 서자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는 것을 알았기에 의학을 공부하여 내의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근방의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의학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0여년 간 의술을 공부한 허준은 점차 의원으로서 명성이 알려졌고 ..

위인 2023.07.04

방정환 아동문학가 어린이날 소파

일대기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서울 야주개(현재 종로구 당주동) 에서 어물 및 쌀 가게를 하던 방경수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방한룡과 아버지 방경수가 함께 운영하던 쌀과 건어물 가게는 야주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가게였습니다. 방정환의 집안 형편은 비교적 넉넉했고 5세 때부터 천자문을 배운 방정환은 총명해서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7세 때 글을 읽는 것이 싫증이 났던 방정환은 삼촌을 따라 몰래 신식학교에 따라갔는데, 교장 선생님은 댕기 머리를 자르면 입학 할 수 있다고 말했고 방정환 그대로 바로 상투를 잘랐습니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긴 했으나 유교 사상이 아직 남아있던 시대이기에 개화파 몇몇 인사들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

위인 2023.07.04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