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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성 요리연구가 대학교수 제2대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오주부의 내돈내산 2023. 7. 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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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황혜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대기

 

황혜성은 1920년 7월 5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아버지 황희승과 어머니 진흥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황혜성의 집안은 천석꾼을 될 정도로 큰 부자였으나 어머니가 31세가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황혜성은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몸이 무척 약했던 황혜성은 다행히 어머니의 지극 정성인 보살핌을 받아 응석받이로 자라게 되었고 보통학교 조차 혼자의 힘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학교조차 두꺼비라고 불리는 머슴의 등에 업혀 다녔고 시험지에는 이름조차 쓸 줄 몰랐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황혜성의 어머니를 학교로 불렀고 황혜성은 1년동안 학교를 쉬게 되었습니다. 

 

황혜성의 어머니는 황혜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키우려고 무척 애를 썼고 1년 후 다시 학교에 간 황혜성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만큼은 잘 했기에 성적도 좋아졌고 결국 1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1935년 16세가 된 황혜성은 사촌 오빠인 황갑성의 제안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사촌오빠의 호된 조력 덕분에 그동안 혼자 하지 못했던 일들이나 편식하는 버릇도 고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황혜성은 자신을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듯 하는 일본 학생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더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점점 학교 생활에도 적응을 하고 성적도 좋아졌습니다.

 

 

 

황혜성도 자립적인 여성이 되었고, 교토 여자 대학에 진학하여 가정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이 김치 냄새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조선인 학생들끼리 몰래 밤참으로 김치를 꺼내 먹곤 하였고, 황혜성은 이 때 우리 음식의 전문가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혜성은 대학을 다니면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현실을 몸소 느꼈지만, 꿋꿋이 대학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졸업식날에는 일본어를 할 줄 몰랐던 어머니가 주소만 듣고 혼자서 찾아왔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한 분 한 분께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조선말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황혜성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조선인으로서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으로 귀국한 황혜성은 여자 고등학교의 가사 선생님이 되었지만 1년 후 부모님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남동생까지 보살펴야 했습니다. 영양학을 전공한 황혜성은 가사 수업의 요리를 담당했는데 실습할 재료도 터무니 없이 적게 배급되고 인고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은 군수 물자 동원에 차출되어 제대로된 수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황혜성은 교사라는 직업에 점차 회의감을 느껴 학교를 그만 두었고 이후 숙명 여자 대학교의 전임 강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42년 일본인 학장이 조선 음식 강좌를 개강하고 싶어 황혜성을 불러 제안했으나 일본 유학 중에도 하숙집 밥을 먹거나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조선의 요리를 할 수 없었던 황혜성은 막막했으나 낙선재에 왕비였던 윤비 마마가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윤비는 고종의 며느리이자 순종의 아내였으며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비였습니다. 윤비의 시중을 들던 상궁들 중 한 명인 한희순 주방 상궁을 만나게 되었고 끈질긴 노력과 진실된 태도 덕분에 결국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황혜성은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음식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음식에 깃든 철학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냈고 1971년 마침내 궁중 음식이 우리나라 중요 무형 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한희순 상궁은 제1대 궁중 음식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다음해인 1972년 한희순 상궁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희순 상궁을 이어 황혜성은 제2대 궁중음식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황혜성은 궁중 음식의 보급을 위해 서양식 계량법이 아닌 우리 음식의 계량 방식을 새로 만들고 이조 궁중 요리 통고, 한국 요리 백과사전 과 같은 책을 편찬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황혜성은 시골을 돌아다니며 향토 음식에 관한 연구도 진행했고 향토 음식 조사 보고서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황혜성은 늘 재료를 생산해 낸 사람들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수고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졌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주고받는 정성 그 자체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12월 14일 86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상

 

1986년 대한민국 교육 훈장 목련장 수상

 

1990년 대통령 문화 훈장 보관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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