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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 생물학자 한국의 파브르 곤충학의 대가

오주부의 내돈내산 2023. 7. 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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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석주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대기

 

석주명은 1908년 11월 13일 평안남도 평양 이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석주명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가장 큰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석주명과 형제자매들은 모두 동물을 좋아해서 다양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웠습니다. 

 

또한 석주명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이 대단했고 나이를 속여가며 학교에 기어코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으로 담임 선생님도 학교에 다니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921년에는 민족학교이자 사립학교인 평양 숭실 중학교에 입학했고, 특히 애국가를 작곡한 선배 안익태와 함께 연극반 활동을 했습니다.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였기에 연극반이었고 어리고 체구도 작았던 석주명은 주로 여자 역할을 많이 했고 역할을 곧잘 해내서 선배들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석주명은 음악에 재능이 있어 피아노, 노래 뿐만 아니라 만돌린, 기타 연주까지 배웠지만 어느날 세계에서 이름난 기타 연주가 세고비아의 연주를 듣고서는 자신은 아무리 해도 저 정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그 뒤로 다시는 기타를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고 자존심 또한 강했던 석주명이었습니다.

 

 

 

1926년 송도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석주명은 일본에서 이름난 농업 전문학교인 가고시마 고등 농림 학교에 입학했고 이 생각을 하게 된 동기에는 송도 고등 보통학교의 농업 기술 발전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농업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고 석주명 또한 어려운 농촌을 잘 살게 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1929년 졸업 후 함경남도 함흥으로 돌아온 석주명은 영생 고등 보통학교 생물 선생님을 거쳐 1931년에는 모교인 송도 고등 보통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석주명은 가고시마 고등 농림 학교 재학 당시 오카지마 교수님 덕분에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선의 나비는 우리나라 사람이 연구해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석주명은 프랑스의 파브르 처럼 자신도 우리나라 나비를 연구하여 뛰어난 학자가 되겠다 다짐했습니다. 나비를 연구하는 곤충학은 실제로 농업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석주명은 일본 학자들이 조선에서 보내온 몇 개의 표본만으로 연구하여 잘못 기록한 부분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채집하고 연구하며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석주명은 드디어 첫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고 일본 나비 전문 학술지인 제피루스에도 발표되어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1933년부터는 나비들의 변이를 조사해 그동안 학계에 잘못 보고된 학명을 바로 잡는 논문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일본의 이름난 대학교수들마저 석주명에게 나비 박사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곤 했습니다.

 

1938년에는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에서 석주명에게 조선산 나비를 정리한 목록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왔고 1939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인쇄해 경성에서 조선산 나비 총목록 이라는 이름으로 책도 출간되었습니다.

 

1942년 석주명은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송도 중학교를 떠나 나비학자로서 좀 더 연구에 전념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9월 경성의 한 백화점에서 나비 전시회도 열게 되었고 개성에 있는 생약 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드디어 우리 말로 논문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논문이나 책을 쓰려고 할 때 알맞은 우리말 용어가 없어 곤란을 겼었습니다. 하지만 석주명은 나비에 우리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이어나갔고 우리 이름이 없는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석주명이 만들어낸 나비 이름 중 70% 정도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석주명은 백두산부터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전 지역을 다니며 채집을 했고 나비의 분포 연구를 모아 책으려 펼치려 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고 총살을 당하여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석주명의 여동생이 남쪽으로 피난을 올 때 지도들을 가져와 30여년이 지난 1984년 한국산 접류 분포도 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사후

 

1964년 정부는 석주명의 공로를 뒤늦게 인정하며 건국 공로 훈장을 수여했고

 

1968년부터는 석주명이 남긴 원고를 정리한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는 과학의 달인 4월 문화 인물로 석주명이 뽑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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