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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아동문학가 고향의 봄

오주부의 내돈내산 2023. 7. 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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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원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대기

 

이원수는 1911년 음력 11월 17일 경상남도 양산읍(현재는 양산시) 북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지만 글을 배웠기에 귀하게 얻은 아들의 이름을 元 으뜸 원, 壽 목숨 수로 이름지었고, 일거리를 찾아 창원읍 중동으로 함께 이사를 갔습니다.

 

6세 되던 무렵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소답리라는 작은 마을의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며 이원수의 문학적 고향이 되었습니다.

 

4년 만에 아버지의 일거리를 따라 김해군 진영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도 이원수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1922년 이원수의 가족은 다시 마산시 오동동으로 이사를 했고 누나의 도움으로 한글과 산수를 배운 이원수는 마산 공립 보통학교 2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원수는 어린이 라는 잡지를 펴내는 천도교의 소년회 문예부에 들어가 글을 쓰게 되었고 글 재주도 인정을 받았지만, 소년회를 이끌던 박 선생님이 일본 경찰에 붙잡혀가고 감시가 심해져 결국 소년회 활동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1926년 이원수가 지은 고향의 봄은 어린이 4월호에 실렸고 학생이 지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시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사랑의 감정을 키워온 최순애가 훗날 아내가 되었습니다.

 

1927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원수는 마산 공립 상업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아동문학 동인회인 기쁨사에서 문학에 더욱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1930년에는 함안군 금융조합에 취직해 직장을 다니면서 문학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참다운 문학은 글을 읽고 쓰는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로 알고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이원수는 농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굶주리는 농민들을 위해 깨우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0여년 간 편지로 사귀어 온 수원의 처녀 최순애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최순애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기차역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 되었습니다. 독서회를 조직해서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일본의 정책을 비난했다 라는 죄목 때문이었습니다.

 

징역 10월을 산 이원수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최순애가 있는 수원으로 향했고 1936년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함안 금융조합에서 임시 직원으로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후 이원수를 비롯한 독서회 회원들은 새 나라의 건설을 위해 치안대를 조직하고 어수선한 질서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습니다.

 

한글 강습소를 만들고 우리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으며 바쁜 와중에도 동시를 지어나갔습니다.

 

1947년 새동무 라는 출판사에서 첫 동시집 종달새를 냈으며 그해 10월 박문 출판사 편집국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49년 어린이를 위한 잡지 어린이 나라에 장편 동화인 숲 속 나라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어린이 잡지 진달래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담은 오월의 노래도 연재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글이라면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동요, 동시, 동화, 소설, 동극, 수필 등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했고 월급과 원고료 수입으로 이원수의 가정도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났으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가족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우리 국군이 서울을 되찾자 다시 이원수 가족은 만날 수 있었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오르던 중 자식들을 잃게 되고 이원수도 열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대구로 내려간 이원수는 어린이 잡지 소년 세계의 편집과 동시, 동화를 쓰는 일에 몰두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1953년에는 소년 소설집 오월의 노래와 장편 동화 숲 속 나라가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954년 한국 아동 문학회의 부회장이 되었으며 한눈을 팔지 않고 계속 아동 문학 창작에 힘써왔습니다.

그러던 중, 1979년 이원수는 서울 대학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고 구강암 진단을 받아 턱 절반을 덜어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1980년 이원수는 아동 문학 부문 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지속적인 암투병으로 1981년 1월 24일 결국 구강안 재발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후

 

1984년 이원수 아동 문학 전집 전 30권이 출간되었고, 정부는 금관 문화 훈장을 추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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