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기
김정호의 출생과 사망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1804년 황해도 토산에서 태어나서 1866년 경에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기록이 아닙니다.
또한, 김정호의 집안은 중인 계층 혹은 몰락한 양반 계층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양반 최한기와 절친 사이였고 많은 지도를 만든 것이 그 이유입니다.
김정호는 어렸을 때부터 지도를 정말 좋아했고 사람들이 모르는 길을 갈 때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도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김정호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책을 구하기도 새로운 서양 학문을 배우기도 힘들었고, 학문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늘 한성에 오고 싶어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학문을 알고 싶어 얼마 안되는 재산을 정리하여 한성의 약현(현재 중림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지도에만 온갖 관심을 쏟는 김정호를 보며 보통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학자 최한기는 김정호의 열정을 이해했고 비싼 서양 책들을 김정호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김정호와 최한기는 지도와 지지가 잘 갖춰진다면 직접 그 고장을 가지 않고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각 지역의 토지와 기후의 특징을 잘 알아야 조세도 제대로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호는 직접 지도책을 만들 계획을 했고 지지로는 동국여지승람, 지도로는 해동여지도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나온 지지가 바로 동여도지입니다.
김정호는 또한 천문 관측을 바탕으로 새롭게 바뀐 경도와 위도에 맞춰 해동여지도를 고쳤고 서양의 학문인 유클리드 기하학의 원리도 하용하여 종이 크기에 따라 지도의 축소 비율을 종합했습니다.
1834년 김정호는 최한기의 후원 덕분에 한참 청구도를 만들고 있었고 세계 지리에도 관심이 많았던 만큼 지구전후도, 5대주도, 지구전요 등 세계 지도도 그려 목판에 새겼습니다.
1857년 최한기가 쓴 세계 지리서인 지구전요에도 김정호의 지도가 함께 실리기도 했습니다.
김정호는 최환기의 소개로 장안의 부자였던 최성환을 소개시켜주었고 재정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금위대장 신헌의 도움을 받아 규장각과 비변사의 지도들도 보며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호는 1861년 마침내 평생을 만들어 온 대작인 대동여지도를 완성했고 금위대장인 신헌을 통해 나라에 알려져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관리들에게도 보급되어 각 지역을 잘 다스리는데에도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후 김정호는 30권 15책으로 구성된 대동지지를 편찬하고 대동여지도를 한 장으로 작게 만든 대동여지전도도 그렸습니다.
김정호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 평생을 지도 제작에 바친 큰 뜻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사후
1958년 국방부 산하에 지리 연구소가 창설되었고
1974년 건설 교통부 산하에 국립 지리원이 창설되어 우리나라의 모든 지도의 기준이 되는 국가 기본도를 만들고 국토의 각종 정보를 기록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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