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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아동문학가 어린이날 소파

오주부의 내돈내산 2023. 7. 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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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방정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대기

 

방정환은 1899년 11월 9일 서울 야주개(현재 종로구 당주동) 에서 어물 및 쌀 가게를 하던 방경수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방한룡과 아버지 방경수가 함께 운영하던 쌀과 건어물 가게는 야주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가게였습니다. 방정환의 집안 형편은 비교적 넉넉했고 5세 때부터 천자문을 배운 방정환은 총명해서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7세 때 글을 읽는 것이 싫증이 났던 방정환은 삼촌을 따라 몰래 신식학교에 따라갔는데, 교장 선생님은 댕기 머리를 자르면 입학 할 수 있다고 말했고 방정환 그대로 바로 상투를 잘랐습니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긴 했으나 유교 사상이 아직 남아있던 시대이기에 개화파 몇몇 인사들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났으나 학교에 정말 가고 싶어하는 방정환을 말릴 수 없었고 결국 유치반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07년 방정환이 9살 되던 해 할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 방인룡 사업에 빚 보증을 섰던 일이 잘못되어 하루 아침에 재산을 모두 잃고 쓰러져 가는 초가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방정환은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학교를 다녔고 대고모님과 이모댁에서 겨우겨우 끼니를 얻어가며 생활했습니다.

방정환의 누나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갔고 방정환은 훗날 이 때를 생각하며 형제별이라는 동요를 짓게 됩니다.

 

1909년 방정환은 사직동에 있는 매동 보통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아버지 방경수는 조선 인쇄 주식회사에서 활자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방경수는 동학 농민 운동 때 수백 명을 지휘했던 천도교 교인 청암 권병덕을 만나게 되었고 이내 천도교 교인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을 깍듯이 공경하고 나라와 집안을 걱정하는 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유교를 버리고 천도교를 믿기 시작하여 온 가족이 천도교인이 되었습니다.

 

 

 

1913년 선린 상업학교에 들어가 주산, 부기 같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방정환은 글을 쓰거나 연극, 영화의 변사처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1914년 선린 상업학교를 그만두고 1915년 총독부 토지 조사국에 취직했습니다. 그러면서 받은 월급으로 집안을 돕고 부지런히 책을 읽었습니다.

 

방정환을 권병덕을 따라 천도교 3대 교주 의암 손병희를 만나게 되었고 방정환이 마음에 들었던 손병희는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방정환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7년 방정환은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정환은 조선 청년을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하기 위해 소년 입지회를 만들었고 힘을 모아 나라를 되찾고 싶었습니다. 1917년에는 친구 유광렬과 함께 청년 구락부를 만들었고, 1918년에는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창간호에는 당시 민족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머리말도 실렸습니다.

 

 

 

1919년 3 1 운동 소식을 전해주는 조선독립신문사의 사람들이 모두 감옥에 갇히자 방정환은 보성 전문학교 등사판을 이용해 직접 신문을 만들어 3주간 계속 발행 배포 하였습니다. 결국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게 되었지만 끝내 자백을 받지 못하자 형사들은 일주일 만에 방정환을 석방했습니다.

 

1923년 방정환은 어린이 라는 잡지를 간행하여 수 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우리 글과 민족혼을 심어주었고 1934년 일제의 탄압으로 발행을 하지 못할 때까지 모두 123호를 발행했습니다.

 

또한 색동회와 조선 소년 운동 협회를 만들고 여러 어린이 단체들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1923년 5월 1일 조선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어린이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후로도 매년 어린이 날 기념 행사를 준비했고 1928년에는 천도교 기념관에서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도 개최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통해 민족의식 고취와 항일 독립 운동의 밑바탕을 제공하는 방정환의 활동을 눈치 챈 일본 경찰의 압력과 탄압이 심해졌고 더불어 건강 상태가 점점 나빠지던 방정환은 1931년 7월 23일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후

 

1946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제정

 

1957년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을 기리기 위해 새싹회에서 소파상을 만듦

 

1976년 색동회에서 어린이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위한 색동회상을 만듦.

 

1978년 정부로부터 금관 문화 훈장을 수여함.

 

1987년 1971년 서울 남산 어린이 회관에 세워진 소파 방정환 동상을 서울 능동 어린이 대공원으로 옮김.

 

1999년 소파 방정환 탄생 100주년 기념 고려대학교에서 명예 학사 학위를 수여함.

 

 

 

소파 방정환 동상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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