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기
지석영은 1855년 5월 15일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지익룡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아 집안에 약재들을 갖추고 있었고 지석영은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지익룡은 친구였던 한의사 박영선에게 한학과 의학을 배우게 했고, 박영선은 한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지석영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지석영은 중인의 신분이었기에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 과목이 제한되었기에 더더욱 의학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석영은 여러 의학 분야에서도 종두법이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후, 스승인 박영선은 일본에 파견되는 수신사의 일행이 되었고 일본에서 종두법에 대해 배우고 종두귀감 이라는 책을 갖고 돌아와 지석영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지석영은 종두귀감 책을 읽었으나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직접 부산에 있는 제생 의원에 찾아가 일본사람에게 종두법에 대한 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해당 일본어 내용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며 우리말 연구도 병행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 종두 기술을 익힌 지석영은 종두묘 3병과 종두침 2개를 얻어 한성으로 향했고 천연두에 걸린 처남을 살려내며 종두법 보급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석영은 1880년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가게 된 김홍집에게 자신도 데려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고, 김홍집도 지석영의 열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비서 역할을 할 수행원으로 수신사에 포함시켜 일본에 데려갔습니다.
일본 의사들은 지석영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고 일본의 의술을 자랑할 속셈도 있었기에 지석영에게 종두 관련 기술을 알려주었고 지석영은 결국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종두법을 보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석영이 들여온 우두법은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한 의술이었고 천연두는 본래 두창이라고 불렸습니다.
천연두에 걸리면 목숨을 잃기 쉬웠고 다행히 병이 나아도 눈이 멀거나 얼굴에 자국이 생기는 등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던 끔찍한 질병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천연두를 일으키는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굿을 하기도 했습니다.
천연두의 치료법을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흔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는 우물 물이 가장 깨끗한 이른 새벽에 떠온 정화수였는데, 근본적인 치료를 하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1790년 무렵부터는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에게 인두법을 시행해 치료를 했는데 체계적이지 않았고 몇몇 사람이 개인적으로 진행을 했기 때문에 널리 전해지지는 못했습니다.
1883년 과거 시험 문과에 합격한 지석영은 틈틈이 책도 쓰기 시작하여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두법 전문서인 우두신설을 발간했습니다.
하지만 1884년 김옥균을 비록한 급진 개혁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몇몇 대신들은 지석영이 고종에게 개혁적인 상소를 올린 것을 빌미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전라남도 강진현의 신지도로 귀양을 오게 된 지석영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농업, 위생, 병의 예방 등에 관한 책도 저술했습니다.
1892년 유배지 신지도에서 풀려나 다시 한성으로 돌아온 지석영은 우두 보영당이라는 종두장을 열었고 1894년 대구 판관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영남 토포사가 되었습니다.
1895년 나라에서는 지석영의 뜻을 받아들여 종두 규칙이라는 법률을 공포했고 1899년 의학교 설립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으며 지석영은 한성 의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습니다.
한글에도 관심이 많았던 지석영은 1896년 대조선 독립 협회 회보를 순 한글로 된 국문론으로 작성하였으며 1907년 국문 연구소를 만드는데에도 참여했습니다.
1914년 일본 총독부로부터 의사 자격증을 얻은 지석영은 한성 계동에 유유당이라는 소아과를 개원했고 이곳에서 계속 진료를 하며 의료 활동에 힘쓰다가 1935년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1979년 세계 보건 기구(WHO)는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공표했습니다.
대한의원 내 지석영 동상
1976년 11월 16일 사적 제248호로 지정되었으며,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1 서울대학교병원 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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